카테고리 보관물: 페미니즘

동요 퐁당퐁당에 스며 있는 여성상과 남성상

윤석중 작사, 홍난파 작곡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 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어 주어라.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퍼질대로 퍼져라
고운노래 한마디 들려달라고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어 주어라.

가사에서 나오는 누나의 역할은 나물을 씻는 것, 고운노래 한마디 부르는 것이다.

누나라고 불렀기 때문에 분명 동생은 남동생일 것이다. 남동생이 하는 것은 누나 몰래 돌을 던지고, 냇물이 도와주어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기를 바라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그랬다. 여성은 그저 나물을 씻고, 노래하는 존재로, 남성은 장난치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에잇 누나를 오빠로 바꿔서 불러보면 어떨까?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오빠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 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오빠 손등을 간질어 주어라.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오빠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퍼질대로 퍼져라
고운노래 한마디 들려달라고
우리 오빠 손등을 간질어 주어라.

그나마 이렇게라도 부르면, 좀 균형이 맞으려나 모르겠다.
오빠님들 나물도 씻고 무치시고, 노래도 좀 불러주세요. 🙂

개구리와 가부장제

개구리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아마도 개구리들이 밤새 울어대서 잠들지 못하는 것을 묘사하고 싶어서 이런 곡을 쓴 게 아닐까 싶다. 이런 맥락으로만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들 손자 며느리” 이 가사는 좀 불편한 지점이다. 지난 번에 페북에서 이 지점에 대해 얘기를 했었는데, 이 부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남성들의 반응이 참 재미있는 지점이었다. 왜 여성분들은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남성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에게는 별로 문제가 안 될 것이다.

명절 때 큰집에 가면 밥먹는 순서는 공교롭게도 아들 손자 며느리다. 어렸을 때 이 지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장유유서가 그렇게 중요하면 며느리들부터 드셔야 하는데, 며느리들은 죄다 뒷전이다.

그래서 나에게 특히 “아들손자며느리”는 불편한 지점이다. “온 동네의 개구리” 정도로 바꿔 불러도 의미 전달은 충분할 것 같다. 더 좋은 개사가 있으면 좋겠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온 동네의 개구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단순히 이 노래 하나 때문에 가부장제가 더 견고해진다고 하기엔 비약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식의 노래가 한 두 곡이 아니라 여러 곡이라면 나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들으며 학습하는 자연스러운 가부장제 문화.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동요들은 비판도 하고 개사해서 대안도 제시할 것이다.

대안 없는 비판은 그냥 비난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생산적이고 더 나아지는 방향의 비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

동요와 페미니즘

우선 좋은 동요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좋은 가사의 동요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사들도 있다.

종종 생각날 때마다 한 곡씩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개사를 해보려고 한다.

얼마전에 곰세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엔 아들손자며느리로 유명한 “개구리”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렇게라도 써놔야 책임감에 글을 쓰겠지 싶어서이다.

동요: 곰 세 마리

곰 세 마리의 “뚱뚱해”, “날씬해”, “귀여워”는 모두 외모를 평가하는 표현들이라, 이제 아이에게는 내가 개사한 곰 세 마리를 불러준다. 🙂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연주해,
엄마 곰은 노래해,
애기 곰은 춤을 추어요.
으쓱으쓱 잘 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개사곡들이 나타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