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 대 수치심

심리학자들이 다들 대단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요즘 느끼는 건, 에릭 에릭슨의 이론이 참 대단하다는 거다.

요즘 아이가 프로이트의 심리발달 단계로 치면 항문기에 있다. 배변 연습을 하고 있다. 기저귀를 하고서도 ‘응가할거야’를 외치며 변기에 달려가서 응가를 성공적으로 해내던 녀석이다.

그런데 아직 소변을 변기에 누는 게 힘든지 연일 ‘쉬하고 있어’를 외치며 바지에 쉬를 하고 있다. 소위 육아와 관련된 정보들은 2~3시간에 한 번 아이가 쉬하게 해 주라고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러면 그럴수록 안한다고 난리다.

그래서 오늘 방식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2~3시간에 한 번 제안하는 것보다도 그냥 아이가 의사를 표현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아이에게 그동안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표하고, 그의 자율성을 존중할 것임을 알려주었다. 자기 직전에 한 번 쉬할 것인지 물어만 보았는데, 스스로 가겠다 하였다. 뭐 앞으로 어찌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바지에 쉬한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것 같다. 이 편이 나도 마음이 편하다.

사실 에릭 에릭슨의 인간발달에 대한 이론을 몰랐다면, 계속 힘들었을 수도 있는데, 이럴 땐 참 이론가들이 대단하다 싶다.


2020.12.19 추가
뭐 그래도 여전히 ‘쉬하고 있어’를 외치며 바지에 하고 있다. 난 또 일희일비 했구나 싶다. 그래도 괜찮다. 마음을 바꾸고 마음이 편해졌으니까. 이럴 땐 상담학, 심리학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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